예술의 도시 파리paris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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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조를 꿈꾸는 미운오리 세상을 날다
알고 떠나자/프랑스France

예술의 도시 파리parisⅡ

by 백조를 꿈꾸는 미운오리 2022.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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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주리 미술관Musee de l'Orangerie

튈르리 정원과 콩코르드 광장을 잇는 명소이자 모네의 <수련><수련> 연작을 소장하고 있는 장소로 유명한 미술관, 미술관의 이름은 오랑제에서 따왔다.. 원래 이 자리는 정원에서 키우던 오렌지 나무 화분을 겨울이면 안으로 들여서 재배했던 온실이었고 1921년 정원을 재정비하면서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미술관의 1층은 두 단으로 나뉘는데 위층은 파사로, 르누아르 등 인상파 화가들이 1,2차 세계대전 사이에 완성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아래층은 타원형 전시실에는 그 유명한 모네이 <수련>이 있다. 처음부터 연작으로 기획한 작품이 아니라 먼저 완성했던 8개의 대형 수련 작품을 연결한 후 더 유명해졌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일본식 정원을 묘사한 작품으로 1차 세계대전의 휴전이 공표된 다음 날 화가가 직접 국가에 기증했다고 한다.

모네<수련>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

루브르 궁전과 콩콜드 광장을 잇는 정원. 왕실 정원사 르 노트르가 설계와 조성을 맡았다은 기와란 뜻으로 정원 바로 옆 센강에 밀집해 있던 중세의 기와 공장에서 이름을 따왔다. 4세기 반을 거치는 동안 왕정 시대 때 있던 승마, 마술장이 철거되고 큰 산책로를 중심으로 두 개의 연못이 들어섰다. 튈르리 정원은 여행자뿐만 아니라 독서와 산책을 좋아하는 파리지앵도 무척 선호하는 장소다 1563년 앙리 2세의 왕비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명으로 세워진 튈르리 궁전에 있던 이탈리아식 정원으로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공사했던 프랑스 조경 설계사 르 노트르에 의해 1664년 완성되었다. 튈르리 궁전은 1871년 파리 코뮌으로 소실되었다.

튈르리 정원

 

퐁 뇌프 다리Pont-Neuf

파리에 있는 다리 중 축조 기간이 가장 길고 가장 오래된 다리, 앙리 3세가 지시하고 그 아들 앙리 4세 때 완공되었다. 길이 238m, 20.5m의 퐁 뇌프는 12개의 아치와 둥근 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난간에는 필롱이 만든 385개의 기괴한 돌조각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지금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퐁뇌프(새로운 다리)'이지만 축조 당시에는 그렇게 부를 이유가 있었다. 센 강을 한 번에 잇는 최초의 다리라는 점, 다리 위에 집이 없다는 점 그리고 인도가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시테 섬을 중심으로 북쪽 또는 남쪽, 한 방향으로만 설치되었던 그 전의 다리와 달리 퐁 뇌프는 시테를 거쳐 센 상을 한 번에 가로지른다. 그 전까지는 서민들이 다리 난간을 따라 2층 판잣집을 짓고 살았는데 퐁 뇌프는 집 대신 인도를 설계했다. 설계 초기에는 퐁 뇌프도 난간 집 설치가 고려되었으나 앙리 4세의 즉위식 때 수정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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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시에르주리Conciergerie

콩시에르주리의 기원은 중세의 시테 궁전이다. 1364년에 샤를 5세가 생폴 궁으로 거처를 옮길 때까지 파리 왕권의 산실이었다. 왕이 떠나고 고등법원으로 용도가 바뀌면서 중요 건물을 관리하는 총책임자의 거처가 필요했고 그것이 장소명이 되었다. ‘콩시에르주는 관리인이란 뜻으로 그의 거처를 공시에르주리라고 한다. 이후 감옥의 형태를 조금씩 갖추면서 프랑스 최초의 감옥이 되었다. 이 장소가 유명한 잉는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4년간 수감되었기 때문이다. 실제가 그녀가 단두대 집행을 당하기 전가지 생활한 성 꼭대기의 거처는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콩시에르주리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노트르담은 중세의 왕권, 대주교관, 행정기관이 수세기에 걸쳐 밀집해 있던 곳으로 파리는 물론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구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테 섬 중앙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10세기부터 400여 년간 왕권을 장악했던 시테 궁전과 주교좌성당의 참사원으로 사용되었다. 12세기 고딕 건축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1163년 주교 슐리에 의해 착공되어 1320년경에 완성되었다. 노트르담은 종교, 건축적으로 뿐 아니라 프랑스의 역사와 발달 과정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유산이다. 1302년 필리프 4세에 의해 삼부회가 최초로 개최되었고 1455년 잔 다르크의 명예 회복 재판이 열렸으며 1804년 나폴레옹 1세의 대관이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드 골이 프랑스의 행방을 축원하며 국가를 부른 곳도 프랑스의 마지막 대통령이란 별명을 가진 미테랑의 장례식이 치러진 곳도 노트르담이다. ‘노트르담우리들의 귀부인이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를 일컫는다.

1160년 파리의 부주교였던 쉴리는 성모 마리아를 찬양하기 위해 시테 섬에 성당 신축을 계획한다. 당시 이 장소는 고대와 중세 로마 시대의 유적지이자 성스러운 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200년이란 세월을 거쳐 1363녀 완공된 노트르담은 길이 127m,너비 48m로 대성당의 칭호에 부족함이 없다. 서당 입구 세 개의 정문에는 섬세한 부족 조각되어 있는데 왼쪽 문은 성모 마리아를 찬양하기 위해 맨 처음 지어졌으며, 마지막 심판이라고 불리는 중앙 문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온 예수의 상이 조각되어 있다. 오른쪽 문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두 천사에 둘러 싸여 있고 그 천사들 뒤로 모리스 쉴리와 루이 7세가 조각되어 있다.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하며 특히 유명한 북쪽의 장미의 창은 중앙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새겨져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

 

푸엥 제로Point zero 

노트르담 대성당 앞 광장에 있으며 파리와 유럽 각 도시 간의 고속도로  거리를 정할 때 기준인 제로 포인트(zero point) 가 되는 곳이다. 1924년 파리 시의회와 구 파리 이사회가 12년간의 논쟁과 회의 끝에 이 장소를 출발점으로 합의했고 같은 해 표지판을 안착시켰다. 푸앵 제로의 기원은 종교가 국가와 일치하던 중세 시대에 죄수들이 대주교관의 문 앞에서 공개 참회를 하던 의식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정의의 층계라고 불렀다. 죄수들은 이 층계 위에서 죄명을 명시한 플래카드를 뒤집어 쓴 채 양손에는 노란 양초를 들고 맨발로 서서 공개적인 망신을 당한 후 감옥에 갇히거나 교수형에 처해졌다. 1767년경 루이 15세의 명으로 정의의 층계는 쇠고리 칼로 바뀌었고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것이 푸앵 제로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푸엥 제로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

인상파 거장의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 센 강의 왼쪽에 위치한 이곳은 원래 몽파르나스 역이 생기기 전에 파리와 오를레앙을 왕래하던 기차의 종착역으로 만들어져서 1900년 만국박람회에 소개되었다. 40여 년간 기차역으로 쓰이던 이곳은 입지 조건과 시설 등에서 뒤처져 1939년 폐쇄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퐁피두 대통령 때 미술관으로 개조할 것이 입안되어 그 후 재건축을 거쳐 1986년 미테랑 대통령 당시 오르세 미술관으로 태어났다. 1848~1914년에 탄생한 장식 예술 작품을 선별해 보관할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인상파와 포스트 인상파의 작품 중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드가의 <발레 수업>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로댕의 <지옥의 문> 등 유명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르세 미술관

2022.10.13 - [알고 떠나자/프랑스France] - 예술의 도시 파리parisⅠ

 

예술의 도시 파리paris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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