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최대의 휴양지 안탈리아Antal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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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떠나자/튀르키예Türkiye

지중해 최대의 휴양지 안탈리아Antalya

by 백조를 꿈꾸는 미운오리 2022.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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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탈리아Antalya

지중해 최대의 관광도시이자 휴양도시로 페라가몬 왕국이 아탈로스 2세가 아탈레이아를 건설한 것이 도시의 기원이 되었다. 1차 세계대전 1918년 잠시 이탈리아가 점령하기도 했으나 아타튀르크의 반격으로 1921년 튀르키예 공화국으로 편입되었다. 근교에 테르메소스와 페르게, 아스펜도스, 시데 등 수많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유적이 있어 관광의 중심이 되는 도시이다.

 

안탈리아 박물관Antalya Muzesi

튀르키예에서 중요한 고고학 박물관 중 하나로 안탈리아 인근 페르게와 아스펜도스 유적에서 발굴된 고대 유물을 중심으로 선사시대와 오스만 제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다양한 전시품이 있다. 박물관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아프로디테와 제우스 등 페르게의 12신상이 있는 방이다. 로마 황제와 그리스 신들의 석상, 화려하고 정교한 대리석관은 세계 최대의 제국이었던 로마의 영광을 말해준다. 페르게와 아스펜도스 유적을 돌아보지 못하는 여행자라면 둘러볼 것을 권한다.

 

하드리아누스 문Hadrian's Gate

구시가지 입구에 있으며 조각이 새겨진 3개의 아치가 있어 위츠 카플라르(3개의 문)’이라고도 불린다. 130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안탈리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해 건립한 문이다. 아취 위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가족의 석상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볼 수가 없다.

하드리아누스 문

이블리 미나레Yivli Minare

안탈리아를 상징하는 높이 38M의 미나레로 룸 셀주크 왕조의 술탄이었던 케이쿠바드 1세에 의해 세워졌다. 이블리는이라는 뜻으로 미나레 외벽에 붉은 벽돌로 여덟 줄의 세로 홈이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바로 옆에 있는 이블리 자미는 비잔틴 시대에 교회였던 건물을 1373년에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한 것이다.

 

마리나 항구Marina Limani

2세기부터 안탈리아를 기점으로 지중해를 오가던 배들이 쉬어가던 일종이 정거장이었다.

 

 콘얄트&라라해변Konyaalt&Lara Beach

콘얄트는 길이가 2km에 달하는 긴 해변으로 모래가 아닌 조약돌이 깔려 있는 자갈해변이다. 라라 해변은 시내에서 약 10km 떨어져 있는 모래 해변이다. 입장료가 있는 해변이라 콘얄트에 비해 한산하다.

콘얄트 해변

카라알리오을루 공원Karaalioğlu Park

지중해와 그 맞은편의 산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다. 공원 입구 근처에는 기원전 2세기에 세워졌다는 흐드르륵 탑Hıdırlık Tower이 있다.

 

칼레이치 박물관Kaleici Museum

오스만 전통가옥과 그리스 정교회를 개조한 박물관으로 안탈리아의 옛날 사진과 오스만 전통 생활양식을 재현해 놓았다. 퀴타흐야와 차낙칼레의 도자기도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차낙칼레 도자기는 현재로서는 기술이 전승되지 않기 때문에 귀중한 수집품이다.

 

쿠르순루 폭포Kursunlu Waterfall

안탈리아 내륙에는 하천이 많아 근교에는 폭포가 많다. 낙차는 크지 않지만 수량이 풍부해 힘찬 폭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숲과 폭포가 잘 어우러져 현지인들이 피크닉 장소로 많이 이용되면 숲 안쪽이 산책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쿠르순루 폭포

케시크 미나레Kesik Minare

오랜 풍상의 흔적이 느껴지는 미나레. 2세기 사원으로 처음 건립된 뒤 비잔틴 시대에는 교회로 사용되다 셀주크 투르크 시대에는 자미로 개조되었다. 1361년 다시 교회로 용도변경이 된 후 15세기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다시 자미로 바뀌는 등 굴곡진 역사를 품고 있다. 1896년까지 자미로 사용되다 큰 화재로 미나레의 윗부분이 소실되어 잘렸다는 뜻의 케시크 미나레가 되었다. 특별한 볼거리는 없지만 칼레이지 구역에 있어 오가며 볼 수 있다.

 

팜필리아의 고대 도시

고대의 도시는 유적일 뿐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에 여행자 편의시설이 없으므로 안탈리에서 1일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페르게Perge

팜필리아의 중심도시로 유적이 잘 남아있다. 트로이 전쟁 이후 칼카스와 모프소스가 계시를 받고 이 곳에 도시를 건설했으며 B,C. 333년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게를 장악하고 아스펜도스와 시대 공략이 교두보로 삼았다. 이후 셀레우코스 왕조, 페르가몬 왕국의 지배를 거쳐 로마 시대에 와서 번영을 이루었다. 번영가도를 달리던 페르게는 7세기 아랍의 공격으로 초토화되고 쇠락의 길을 걸었다.

 

아스펜도스Aspendos

그리스 전설에 따르면 펠레폰네소스의 아르고스인이 세운 도시라고 한다. B.C. 333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항복하였으며 이후 페르게와 마찬가지로 셀레우코스 왕조, 페르가몬 왕국을 거쳐 로마의 소아시아 속주로 편입되었다. 현재 원형극장과 수도교 일부를 제외하고 옛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스펜도스의 원형극장은 매년 국제 오페라와 발레 페스티벌이 개최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테르메소스Termessos

해발 1,200m의 귈릭산 속에 건설된 도시로 지리적으로는 리키아 지방에 속하지만 테르메소스 주민들은 스스로 리키아(현재의 올림포스, 카쉬, 칼칸, 페티예에 이르는 지역을 칭함)인들보다 먼저 살았다 솔리모이종족의 후손으로 칭했다. 리키아 동맹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리키아도시들과도 전쟁을 했다. 험준한 산과 계곡을 최대한 활용하여 성곽을 쌓은 덕에 B.C. 333년 알렉산 대왕조차 이곳의 공격을 포기하고 물러갔을 정도였다. 번영가도를 달리던 도시는 잦은 지진으로 쇠락했다.

시데Side

B.C. 7세기 그리스인이 세운 이오니아의 식민도시로 번영을 누리던 곳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원형극장은 아스펜도스의 극장과 함께 공연이 펼쳐진다. 시데 유적의 백미로는 아폴론&아테나 신전이다. 건립 연대는 출토된 동전으로 미루어 2세기 후반 무렵으로 추측된다. 신전은 전부 2개였는데 앞뒤로 각 6, 좌우로 각11개의 기둥이 사용된 코린트 양식으로 지어졌다. 코린트 양식이라 기둥이 상단 부분이 아칸서스 잎으로 조각된 것을 말한다. 지금은 다섯 개의 기둥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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