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론티의 나라 스리랑카Sri Lan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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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떠나자/스리랑카Sri Lanka

실론티의 나라 스리랑카Sri Lanka

by 백조를 꿈꾸는 미운오리 2022.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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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Sri Lanka

 

국명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 공화국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국호를 실론에서 스리랑카로 바꾸었다. 국토이 생김새가 눈물 또는 진주처럼 생긴 데다 인도의 꼬리 쪽과 맞닿아 있어 인도의 눈물 또는 인도으 진주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16세기 초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에 이어 영국까지 오랜 기간 유럽의 지배를 받았지만 그 흔적을 지우기보다 오히려 잘 다듬어 놓아 여행자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다.

 

수도 스리자야 와르데네 푸라 코테(행정수도:콜롬보)

 언어 싱할라어, 타밀어, 영어

 

 통화 스리랑카 루피(LKR)

 종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상좌부 불교를 국교로 정한 스리랑카는 국민 대다수가 불교 신자이며, 타밀에서 건너온 힌두교 신자가 그다음을 잇는다. 그 외 이슬람교와 기독교 순이다.

인종 싱할라족(74%), 타밀족(18%), 무어족, 말레이족, 버거족

국기

노랑과 초록, 주황, 갈색이 어우러진 스리랑카 국기는 1972년 제정되었다. 국기 안에 있는 갈색 지사각형이 각 모서리에는 금색 보리수 잎이, 그 가운데에는 오른쪽 앞발에 칼을 든 사자가 그려져 있는데, ‘보리수 잎은 불교를 사자는 인구의 70%이상을 차지하는 싱할라족이 사자의 잔손임을 의미한다. 국기 왼편에 초록과 주황색은 각각 이슬람교를 믿는 무어족과 힌두교를 믿는 타밀족을 상징한다.

 

시차 한국보다 3시간 30분 느리다.

 

스리랑카의 역사

마나르 시대Mannar BC 543~BC 377

스리랑카의 역사시대는 마나르에 상륙한 바자야가 통치를 시작하는 기원전 543년부터 시작하여 기원전 377년 수도를 아누라다푸라로 옮기기까지 약 170년간을 말한다. 전설에 따르면 비자야는 남이도 벵갈 지역에서 온 사자의 후손이라고 하는데 이후 16세기까지 스리랑카는 이 사자의 후손들이 통치하는 지구상 최장의 단일 왕조로 이어져 나가게 된다.

 

아누라다푸라 시대Anueadhapura BC 377~ AD 1017

기원전 377년 제 6대 판두카바야 왕은 수도를 아누라다푸라로 이전하면서 아누라다푸라 시대가 시작되었다. 기원전 3세기 데바남피야 팃사 대왕 때는 인도 아쇼카 대왕의 아들인 마힌다 장로에 의해 최초로 불교를 수용하고 남방 상좌부 불교가 전통을 이어갔다. 기원전 1세기에는 불교 역사에서 유일한 초기 경전인 팔리어로 된 삼장을 문서로 만들었으며 기원후 5세기 시리메가바나 왕 시절에는 인도 벵갈에서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전해졌는데 이 불치는 싱할라 왕조의 적통을 상징하는 옥쇄와도 같은 존재로 모셔졌다. 1400여년의 아누라다푸라 시대에는 4차례 남인도 타밀의 침공으로 식민통치를 받은 기간이 모108년이나 된다. 이런 외세의 침공으로 인한 왕실의 분열과 수많은 쿠데타와 정통성 없는 왕위 계승, 남인도 타밀과의 전쟁과 국혼 등 정치적 갈등이 이어지며 타밀 촐라의 침공으로 수도 아누라다푸라가 함락되면서 왕족들은 남인도로 끌려가거나 산속으로 도피하였다. 남인도 촐라 왕국의 전성기에 스리랑카는 천년고도 아누라다푸라의 함락이라는 시련을 겪게 되고 타밀 세력에 밀린 싱할라 왕조는 본래의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에서 남으로 이동하여 11세기에는 폴론나루와로 이전하게 된다.

 

폴론나루와 시대Polonnaruwa 1017~1236

1017 타밀 촐라에게 함락된 후 아누라다푸라의 싱할라 잔존 세력 중 1056년 비자야 바후 1세를 중심으로 싱할라 왕조 부흥이 시작되었는데 이때 이들이 정한 수도가 폴론나루와이다. 스리랑카. 역사사 위대한 왕으로 불리는 왕은 두 명 밖에 없는데 첫 번째가 기원전 3세기 아누라다푸라를 수복시킨 도투게무누 대왕이 있고 두 번째가 폴론나루와 시대 파라쿠라마 바후 대왕이다. 파라쿠라마 바후 대왕은 문란해진 왕실의 정사를 바로잡고 셋으로 갈라진 불교 승단을 소승 상좌부로 통합하고 경전 결집을 열어 소승 상좌부의 전통 삼장을 재정립하였으며 부주석서인 아누티카의 결집을 통해 이견 없는 소승 정통을 확립하였다. 현재까지도 소승 상좌부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승단 규약인 까티까바다의 제정을 통해 종단 혁신에 성공하는데 이 시기를 폴로나루와 시대의 전성기라고 한다. 그의 사후 50년 동안 13명의 왕이 등극하지만 왕실이 권력투쟁과 세 차례의 남인도이 침공으로 폴론나루와 시대는 종말을 한다. 결국 싱할라 왕조는 폴론나루와를 버리고 남서부이 야파후와로 수도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스리 상가보 시대Sri Sangha Bo 1236~1590

폴론나루와에서 야파후와 감포라, 코테를 거치는 시기는 피난 수도 시기로 승려 이상의 법력을 가진 왕들이 등장하는데 이 시기를 스리 상가보 시대라고 한다. 이때 분할된 지역을 각기 다른 왕조가 시대 차이를 두고 통치하였다.

1505년 갈레 항구에 포르투갈 함대가 상륙하여 초기에는 통상이 목적으로 성채를 쌓고 싱할라 왕조와도 협력관계를 유지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싱할라 왕국은 물론 현지 주민들과도 심한 갈등을 겪게 되면서 시타와카 왕조 때 포르투갈을 직접 공격하였다가 실패한 후 왕조는 멸망하고 포르투갈의 직접 지배가 시작되었다.

갈레

캔디 시대Kandy 1590~1815

1590년 잔존 싱할라 왕족은 수도를 캔디로 정했지만 1640년 네덜란드 세력이 포르투갈을 쫓아내고 새로운 식민 지배가 시작되었으며 1786년 영국이 네덜란드 세력을 물리치고 스리랑카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이 무렵 싱할라 마지막 네 명의 왕은 싱할라 왕조의 정통을 계승했다고 보기 힘든 남인도 마두라이 왕조 출신이었다. 서양 열강의 내정간섭과 왕조 내부의 정권투쟁과 통혼 강요로 인해 2000년 이상 이어진 단일 최장 왕조인 싱할라 왕조는 막을 내린다. 1796년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1815년 항복 조인 협약으로 왕정이 폐지되었고 싱할라 왕족이 후손은 일반인으로 강등된 채 명맥을 이어가다 1972년에는 후손조차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서구열강 지배시대 1815~1945

영국 식민 지배 시기는 남인도 타밀 족들을 강제 이주시켜 차, 고무, 향신료 등을 재배하는 노동력으로 활용하면서 인구 구성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팔리어 삼장을 영어로 번역을 하는가 하면 불교 유적지를 발굴 조사하는 등 신 불교 르네상스를 주도하였다. 2차 세계대전이 지나면서 19482월 독립을 이루었지만 독립 후에도 영국의 영향력이 그대로 남아 있어 총독의 임명권도 빅토리아 영황이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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