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업보는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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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단상

내 업보는 집착

by 백조를 꿈꾸는 미운오리 2022.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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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의 무게는 전생의 업보다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흔히 오가는 말이다. 배낭을 꾸릴 때마다 나는 이 말을 되새기곤 한다. 업보를 조금이라도 내려놓기 위해 수없이 짐을 고쳐 꾸린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첫 여행보다는 무게가 줄긴 했지만 더 이상은 줄지 않는 무게의 마지노선이 나의 업보라 생각하며 여행을 다녔다.

 

러시아 모스크바를 거쳐 튀르키예에 도착했다. 환승시간이 짧은 데다 비행기의 연착으로 정신없이 뛰어 튀르키예 발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나의 짐은 타지 못했다. 상상조차 안 해본 일이라 의심 없이 늘 하던 대로 수화물 벨트만 노려보며 파란 배낭을 찾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과 같이 수화물 벨트는 무심히 돌아가고 있었고 친절한 튀르키예 청년이 나의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너의 짐은 나오지 않아. 그러니까 저쪽 사무실로 가봐

 

주변인 중에 겪은 사람도 없고 내가 겪은 적은 더더욱 없는 블로그에서나 보던 수화물 분실사태가 벌어졌음을 알아차렸다. 귀중품이 든 작은 배낭은 내가 지니고 있었지만 큰 배낭의 짐이 귀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도착하면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잠을 자려고 했던 나의 작은 바람이 이룰 수 없는 꿈임을 알려주는 순간이었다.

비루한 영어실력으로 이 일을 어찌 해결해야 할지도 난감했다. 최대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표정으로 튀르키예 청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친절한 청년은 나를 공항 수화물 분실 사무실로 데려가 주었고, 영어도 터키어도 안 되는 나를 도와주었다. 다행히도 분실은 아니며 비행기를 미처 타지 못했다는 말에 나의 걱정이 3분의 2쯤은 줄어든 것 같았다. 나의 배낭의 크기와 호스텔 주소를 적어주고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을 배낭의 무사귀환을 빌며 공항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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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이 없어 당장은 불편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것 밖에 없었다. 간단히 세면도구를 사고, 4월의 이스탄불 추위를 막아줄 겉옷도 샀다. 계획했던 대로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밥을 먹고 잠을 잤지만 오지 않은 배낭이 신경 끄트머리에 매달려 나의 발걸음을 짓눌렀다. 흥분과 감탄으로 보아도 모자랄 이스탄불의 관광지를 그저 빈 동공으로 지나친 걸 보면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괜찮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하루, 하루가 지날수록 걱정이 마음을 덮어버려 여행의 의욕마저 상실시켰다.

하루면 도착할 줄 알았던 나의 배낭은 꽉 찬 3일째 이스탄불을 떠나기 전날 밤 도착했다. 내 물건이 왔다는 반가움도 잠시 배낭 속 짐을 보자 애면글면 속 끓이던 지나간 내 모습이 한심했다. 배낭 속에 담긴 것은 잃어버린 물건이 아닌 없어도 상관없을 아니 없어도 괜찮은 나의 집착과 욕심이었다. 내가 편하게 입던 옷과 나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한 화장품, 향이 좋은 세면용품들 절대적으로 있어야 할 애착의 물건은 아니었다. 그것들이 없었던 3일 동안 약간의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것이어야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값을 지불했기에 아까움에 노심초사 한 것이지 물건에 대한 애정은 아니었다. 이미 잃어버린 것에 대한 집착으로 지금 당장 가지고 있고 누렸어야 할 여행의 즐거움을 잃어버렸다. 집착에 구속당해 불안해했던 날들이 지나자 허탈함이 밀려들었다. 자유롭고자 떠난 여행에서 가벼울 수 없는 물건들이 나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가교 이스탄불 - 구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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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고 아시아를 잇는 가교 이스탄불 - 신시가지, 아시아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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