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는 곳은 없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요.”
‘므앙씽’ 가는 버스터미널 위치를 묻는 식당 주인이 말했다.
식당 안에 손님이라고는 나 밖에 없는 ‘루앙남타’
지나가는 여행객도 보이지 않는 도시이다.
거기서도 산길을 2시간 이상 가야하는 ‘므앙씽’
그곳을 간다고 하니 친절한 말투로 나를 달랜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
무언가가 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여행자의 특권임을,
그 분은 알지 못하는 듯 했다.
평탄하지 않은 도로를 버스는 위태하게 달렸다.
울창한 나무 숲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어쩌다 초록이 아닌 다른 색깔을 가진 식물들이 보일 법도 한데,
온통 진초록, 청록, 녹색의 고만고만한 색들이 햇빛에 반사되고 있었다.
길은 좁았고, 버스는 기우뚱거렸지만 풍경만은 장관이었다.
한 굽이돌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느낌의 산이다가,
또 한 굽이돌면 가보지 않은 아마존 밀림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버스가 한 번씩 허리를 꺾을 때마다 다른 풍경들이 펼쳐졌다.
아름다움이 아닌 멋진 길이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여행객은 그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작은 동네였다.
뭔가를 구경하러 온 내가 오히려 구경거리가 되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조심스레 살피다
눈이 마주치면 쳐다봐서 미안하다는 듯 다정한 웃음을 보여줬다.
닭소리에 아침잠을 깨고,
밀린 빨래를 하고,
숙소 뒤 누런 벌판을 멍하니 보다가,
배고픔을 핑계로 숙소를 나가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고,
풀벌레 소리를 자장가 삼아 외롭지 않게 잠들었다.
단조로웠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쳐다보던 동네 주민들은,
둘째 날은 인사를 하고,
셋째 날은 안부를 물으며, 먹을거리를 나눠주기도 했다.
마치 새로 이사 온 이웃마냥.
아이들과 같이 축구를 하고,
아주머니들과 같이 채소를 다듬고,
먼지 날리는 길가에 앉아,
무료함을 달래고 있는 할아버지 옆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 속에 내가 있었다.
배낭을 메고,
터미널로 가는 동안
사람들로부터
아주 긴
배웅을 받았다.
아무것도 없기에
사람들이
더욱 빛났다.
2022.09.25 - [알고 떠나자/라오스Laos] - 시간이 멈추는 곳 왕위왕(방비엥)Vang Vieng, 씨판돈(돈 콩)Si Phan Don, 므앙씽Muang 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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